800년간 봉인된 이름 몽골 징기즈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 그러나 1960년 이후 징기스칸의 이름이 거론되고 그의 제국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800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처럼 신화나 구전으로만 알려진 인물이 아니라면 그의 업적을 봉인한 이유는 무엇일까.


1. 징기스칸의 영토

세계의 정복자라고 하면 징기스칸과 알렉산드로스도 셀 수 있지만, 영토로 따지면 징기스칸은 알렉산드로스, 나폴레옹, 히틀러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땅을 가지고 있다.

몽골 지역을 완전히 통일한 징기스칸은 1211년 중국 정벌에 나서 사막과 초원을 넘어 만리장성을 정복하고 1215년 금나라의 수도인 베이징을 정복했다.

징기스칸은 볼가강 유역에서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코카서스, 러시아, 크림반도, 동유럽까지 계속 정복했고, 몽골을 통일한 지 20년 만에 유라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다.


몽골의 서방진출로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은 나라는 이슬람 중동이었다.

중동의 경제적, 문화적 기반은 수백 년 동안 뿌리째 뽑히고 철회되었습니다.

유럽 ​​최강의 군대인 신성로마제국과 폴란드군이 권력을 남용해 패퇴해야 했기 때문이다.

칸의 임명 문제로 인해 몽골군이 후퇴하지 않았다면 서유럽은 확실히 정복되었을 것입니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국가는 러시아였습니다.

서유럽과 같은 지위를 누렸던 러시아는 몽골의 침략으로 학살당했고, 무역과 공예의 기반이 무너져 농경국가로 전락하면서 러시아를 300년 동안 후진국으로 내몰았던 것도 몽골이었다.

2. 중국과 러시아의 보복

14세기 중반 원나라가 명나라에 멸망하자 몽골은 무너지고 몽골은 계속 저항했지만 17세기 중국을 점령한 청나라는 80년 동안 몽골과 전쟁을 벌여야 했다.

청나라가 내몽골과 외몽골로 분할된 이후에도 중국은 외몽고의 독립 시도를 거듭 저지했다.

192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소련은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징기스칸 이야기를 지우고 금서로 지정해 불태웠다.

소련이 몽골을 위성국가로 통치한 지 70년 동안 소련은 징기스칸을 없애기 위해 철저한 시도를 했으나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의 가치를 몰래 물려주고 고향인 헨티에 기념비를 세워 이를 기념했다.

1961년생 그의 탄생 800주년.

그의 생애가 서양에 전해진 이후로 그의 이름은 계속해서 거론되고 있다.

미국 아카데미의 몽골 나이테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몽골의 태도 변화를 일컫는다.

1180~1190년 극심한 가뭄으로 초원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통일로 이어졌다.

1211년부터 1225년까지 강우량과 기온의 증가는 풀과 물이 풍부해 말의 번식으로 이어져 금나라와 서방을 제패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몽골의 징기스칸은 순식간에 세계를 집어삼킬 힘을 가졌다.

그의 잔인함에 떨고 있는 식민지들은 수백 년 동안 그의 이름과 역사를 지워 수치와 치욕을 지워왔다.

사상정자처럼 산산이 부서진 몽골 징기스칸의 사연, 그 맹렬한 충격을 인정할 때다.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여 식민지화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